197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의한 고도의 경제성장 그리고 세계화 속에서, 우리가 진정 잃어버려진 삶의 지혜와 장치는 무엇이었는지그리고 오늘날 되살려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새삼 돌아보게한다.
한 쌍의 남녀를 정식의 부부로 되도록하며, 또한 혼인이 이루어졌음을 사회적으로공인하는 의례이다.
혼례 절차의 의미와 역할‘총각과 처녀’를 ‘신랑과 신부’로, 그리고 ‘남편과 아내’로 그 사회적 지위를 단계적으로 변환시킨다. 미혼의 남녀가 신랑과 신부로 전환되는 과도적 시간과 공간에서, 그들을 해코지할지 모르는 잡귀나 액운을 물리치고 대신에 부귀다남(富貴多男) 등의 행운을 보장한다.
‘지역,’ ‘마을’, ‘집안’과 ‘신분, ‘계층’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 존재
- 남자가 여자집에서 혼례를 거행하고 그대로 처가에서 살다가, 자녀를 낳아 자녀가 성장하면 본가로 돌아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혼인풍속
- 중국의 혼인의례인 육례중의 하나로, 신랑이 신부집에서 신부를 맞아와 자신의 집에서 혼례를 진행하는 절차
처가살이이혼은 최소한 3세기 이전부터 시작된 오랜 전통이고, 친영은 15세기에 들어서야 조선 정부가 강요한 새로운 중국식 혼인 제도였다. 친영은 예서(禮書)에서 제시된 이상형(理想型)이었지만, 처가살이혼은 실제 일상생활에서 실행된 실제형(實際型)이었다. 이들 2개의 혼인 방식은 조선 중·후기를 거치면서 점차 반친영(半親迎)등으로 절출되어 갔다. 영남에서는 해묵이·달묵이 등으로 조정되었다. 특히 울주 지역에서는 해묵이의 전통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문화접변(文化接變)이었다.
처가살이혼의 유래혼인을 하기로 약속이 되면, 여자집에서는 본채 뒷편에 작은 별채를 짓는다. 이 집을 ‘서옥’이라 부른다. 해가 저물면, 신랑은 신부 집 대문 밖에 이르러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부르면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신부와 서옥에서 함께 잠을 잘 수 있도록 간청한다. 이렇게 두세 번 반복한다. 이윽고 신부 부모가 동침을 허락한다. 그러면 신랑은 서옥옆 돈과 비단을 놓아둔다. 자식을 낳아 장대해 지면, 마침내 신부를 데리고 신랑 집으로 되돌아간다. - 「중국정사조선전」, 삼국지 -
납채(納採) | 혼인의 말이 있어서, 여자 집에서 허락을 하면 남자 집에서 기러기를 보내어 채택지례(采擇之禮)를 행하고 혼약을 청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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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問名) | 납채의 길흉을 점치고자, 여자 집 어머니 성(姓)이 무엇인지 묻는다. |
납길(納吉) | 성을 받아 점을 친 후, 길조(吉兆)를 여자 집에 알려서 혼인을 확정 짓는다. |
납징(納徵) | 폐백을 보내어 혼인의 증명으로 삼는다. |
청기(請期) | 남자 집에서 여자 집으로 가서 성혼(成婚)의 날짜를 청한다. |
친영(親迎) | 여자 집 아버지가 아들에게 명하여 여자를 맞아오도록 한다. |
의혼(義婚) | 양가 집에서 혼사를 의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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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채(納采) | 남자 집에서 혼인을 하고자 예를 갖추어 청하면(사주四柱) 여자집에서 이를 받아들인다. |
납폐(納幣) |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예물을 보낸다. |
친영(親迎) | 신랑이 신부를 친히 맞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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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절차 명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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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涓吉) | 혼인하기에 좋은 날을 택하여, 신랑 집으로 문서로 보내는 일 |
초행(初行/醮行) | 신랑이 대례를 올리기 위하여 신부 집으로 가는 일 |
재행(再行) | 혼인을 한 뒤, 처음으로 신랑이 처가에 가는 일 |
동상례(東床禮) | (또는 신랑매달기라함) 재행을 갔을 때, 처가 친척이나 그 이웃이 신랑을 짓궂게 다루는 일. |
폐백(幣帛) | 신부가 시댁 어른들에게 큰절을 올리고 선물을 바치며 인사를드리는 일 |
근행(勤行) | (또는 근친) 시집간 딸이 친정으로 시집살이를 잘하고 있다는 뜻으로 인사가는 일 |